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정왕후 조씨 (문단 편집) == 기타 == * [[1899년]](광무 3년), [[대한제국]] 성립 이후 남편인 [[효명세자|익종]]이 '''문조익황제(文祖 翼皇帝)'''로 [[추존]]되자 함께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추증]]되었다. * 특이한 기록을 여럿 갖고 있는데, 그녀의 정식 시호는 효유헌성선경정인자혜홍덕순화문광원성숙렬명수협천융목수령희강현정휘안흠륜홍경태운창복희상의모예헌돈장계지경훈철범신정왕후(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文光元成肅烈明粹協天隆穆壽寧禧康顯定徽安欽倫洪慶泰運昌福熙祥懿謨睿憲敦章啓祉景勳哲範神貞王后)로서 총 60자이며 [[세계]] [[왕비]]들을 통틀어 가장 [[시호]]가 긴 [[왕비]]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시호]]가 가장 긴 사람은 남편인 [[효명세자|문조]]. 또한 정식 [[왕비]]는 아니지만 '''[[조선]] 역대 왕후 중 가장 장수한 왕후'''[* 2번째가 [[정순왕후(조선 단종)|정순왕후]]인데 아시다시피 이 인물은 [[왕비]]로 지낸 시간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사망|승하]]당시는 [[왕비]]도 아니었다.]로, [[조선]]의 [[대비]]들 중 가장 오랜 기간 [[대비]]로 있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수렴청정]]을 한 [[대비]]들 중 유일하게 정식 [[왕비]]가 되지 못한 사람이다. 실로 격동의 [[조선]] 후기를 온몸으로 체험한 '정말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만했던 인물. * 남편인 [[효명세자]]와는 은연 중에 연결되는데 신정왕후의 증조부가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들여온 [[조엄(조선)|조엄]]이다. 조엄의 부인 즉 신정왕후의 증조모가 정경부인 [[풍산 홍씨]]이며 [[홍봉한]]·[[홍인한]]의 여동생이다. [[홍봉한]]의 딸이 다름아닌 [[혜경궁 홍씨]]이므로 신정왕후는 [[조엄(조선)|조엄]](풍산 홍씨)의 증손녀, 남편인 [[효명세자]]는 [[홍봉한]]의 외현손자이므로 촌수로 따지면 외7촌이다. 그러므로 남편 [[효명세자]]와는 홍현보를 공통 조상으로 하는 9촌 관계이다. * 남편 [[효명세자]]와 [[결혼|혼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을 당시에 제작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外奎章閣)에 보관되어 있다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프랑스]]로 무단 반출되었다. 일각에서는 병인양요로 인해 책봉 죽책이 전소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었으나 이후 150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2018년]] 공개되었다. [[프랑스]]의 개인 소장자가 소장하고 있던 물건을 국외 소재 문화재재단에서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으로 구입하여 국내로 반환되어, 영구히 되돌아 왔다고 한다.[[https://www.yna.co.kr/view/AKR20180131052151005?input=1195m|#]] * [[1847년]](헌종 13년) 1월 1일, 신정왕후가 40세가 된 해를 맞이하여 [[창덕궁 인정전]]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생일]]을 축하하는 진하연이 열렸다. [[헌종(조선)|헌종]]은 어머니 신정왕후에게 직접 치사(致詞)와 전문(箋文), 표리(表裏)를 올렸다. 또한 신정왕후의 사순을 기념하여 [[헌종(조선)|헌종]]은 공인 3000석과 시민의 한 달 동안의 요역등을 특별히 탕감해 주었다. 신정왕후의 40세를 축하하는 진하연을 그린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은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732호로 지정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